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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동 에서..

hokunsoo 2021. 8. 3. 06:27

 

 

숨이 턱까지 차 오른다..

지하철로 개봉역까지...그리고 개봉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그리고..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전철안이나 버스안은 시원하지만 밖으로 조금만 나와도 너무 더워 숨이 막힌다..

 

마스크를 쓰고..

한손에는 손수건을 들고 ..한손에는 조그마한 손가방을 들고..

 

다시 중고라도 자동차 하나 장만해..그런생각도..

다른건 다몰라도.. 너무 더워.. 거리를 걷는 자체가 짜증 스럽다..

 

하지만 분명 자동차가 없으면 펀안함도 분명있다..

시원한 차안에서 잠을 자면서 목적지에 도착할수 있다는점..

 

아무리 신경을 안쓴다고 해도..

운전중에는 신호등이며 이것저것.. 신경이 쓰인다 ..긴장도 해야하고..

 

경비를 절감하는 문제도 무시 할수가 없고..

무엇보다 장거리에는 한두시간 시원하게 한잠 자면서 목적지 까지..

가는것이 몸이 너무나 상쾌하고..편안하다..

 

하지만 짧은 거리는..역시 자동차의 편리함이 그리운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고 코로나는 잡힐것이고 ..또 일년중 절반은 나는 해외로 또 나갈 것이고..

 

지금 이 나이에 10년을 넘게 운전을 하지 않았는데..운전하기도 솔직히 겁도나고..

 

이생각..저생각 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개봉동 그친구 점포에 도착을 하고..

 

******

 

30년이 조금 넘은것 같다..그 친구와는

그 친구와는 화장품 초창기시절 ..서로다른 화장품회사 삼푸반에서..

 

고정 거래선인 슈퍼마켓을 돌며 삼푸와린스 그시절 ..

막 바디크렌져가 유행하기 시작하던..서로 자신의 상품인 샴푸 린스 바디크린져를..

 

가장 좋은 위치인 골드죤에 진열하려고 몸싸움을 벌리던 그런 경쟁업체 사이였다..

그러다 이런저런 사연을 뒤로하고..수입 화장품 회사에 재취업을 하고보니..

 

그친구가 나보다 먼저 그회사에 입사해 있었다..

그친구는 주로 강남 과 강동 화장품 점포를 돌고 난 중구 명동과 남대문시장을..

 

그러고 보니 남대문에 화장품을 팔았던 시절이 벌써 30년이 넘은것 같다.

내가 30대 시절..그시절 점주님들도 아직도 남대문이나 명동에 화장품 점포를 운영하시는

분들이 많이 남아 게신다..나도 아직도 현역이지만..

 

내가 그친구와 가깝게 된건..

그시절 황금 노선인 강남 고속터스터미날 지하상가 .. 대략 그시절..

 

그 강남 고속 터미널 지하상가에 화장품 점포가 20여곳 꽤 많았었는데 ..

그 화장품 점포가 전국에서 가장 장사가 잘된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시절이였다..

 

그 황금 거래선을(서초 강남 강동 포함) 그친구가 내게 이런저런 이유로 넘기면서..

그친구는 내 거래선인 남대문과 중구 종로 명동거래선을 서로 맞교환 하면서..

 

그친구와는 급속도로 친해지고..

나와는 3살정도 어린 친구엿지만 친구처럼 서로 시간만 나면 싸우고 ..화해하면서 슬먹고.

 

말 그대로 미운정 고운정 모두 든 그런 사이였다..

 

****

 

세월이 한30년 흐르는 사이..

참 많은것이 변해 있었다..

 

난 포항에서 포철을 다니다 사표를 내고 포항 촌놈이 서울로 올라와 ..

시계회사에 입사 그리고 그회사 시계대리점 을 경영.. 그리고 부도..

 

그리고 화장품 회사에입사 삼푸반 슈퍼마켓 순회사원 그리고..

수입화장품 회사로 이직.. 그리고 화장품을 직접수입.. 그리고 또 부도..

 

그리고 중국으로 일본으로 대만으로 10년 해외로 떠돌다..

일본에 정착 10년 ..그리고 코로나로 ..다시 국내 화장품.점포를 다시 순회 판매..

 

그친구는..

 

화장품 회사 퇴직후 바로 화장품 점포를..전성기에는 무려 4곳 까지 점포를 운영 하였는데..

화장품 의 브랜드샵 열풍 으로 ..그도 나도 같은 시기에 부도..

 

그 친구는 ..

다정리하고 경매로 넘어 가려고하는 조그마한 낡은 아파트를 겨우 장만하고..

남은돈으로 아주 조그마한 화장품점포를 얻어 와이프에게..

 

그리고 자신은 나까마로 ..지금은 와이프와 둘이서 심심풀이로 화장품 점포만 운영 하고있다..

문제는

그 아파트가 문제인것 같다..

 

******

 

어느날 갑자기 그친구 아들이 ..

자신의 아파트 융자금 갚기가 힘들어 아파트를 처분하고..

 

친구의 아파트로 합치면 어떠냐고 ..

노인 두분만 살기에는 너무집이 크지않느냐..외롭지 않느냐며..

 

그친구의 조그마한 아파트는 재개발되서 지금은 아파트 28평 ..시세가 8억 이라고한다..

5천주고(융자 4천) 9천 아파트가 재개발을(1억6천추가부담) 거치면서 25년만에 그렇게 커 졋다고..

 

문제는 딸아이가 와서..

자신이 전세를 사는데 전세금 4억에서 1억이나 올려 달라고해서..

 

융자를 받아야 하는데 그돈 갚을 여력이 없다고.. 부모님이 조금 도와줄수 없냐고..

아니면 손주좀 봐달라고..딸아이도 돈을 좀 벌어야 할것 같다고 반 협박..

 

아마도 부모집을 담보로 ..어덯게 도와 달라고 하는것 같다며 한슴..

 

그친구도 반대 나도 반대..

요즈음 자식과 함께사는 노인들이 어디있느냐 ..

 

잘 살다가 왜 ..이시국에 이제와서.. 왜 왜..

자식을 이해하기도 싫고.. 이해 할수도 없고.. 그친구 와이프도 절대반대..

 

이제와서 다늙어서 손주 봐주면서 살수는 없다고..

차라리 지금 장사는 안되지만.. 화장품 점포나 운영하면서 사는게 편하다고..

 

그친구 아무래도 자식들의 의도가 불순 하다며..

집을 주택연금에 넣고 월 160만원정도를 받기로..

 

지금 연금 120 만원과 주택연금 합치면 대략 300만원 정도..하면 두부부 생활은 충분하다고..

화장품 점포야 어짜피 .. 별 소득도없고 단지 심심해서..

 

화장품 30년 동료들 만나는 사랑방 역활이나 하면서..

그친구 와이프는 와이프대로 동네방네 여인네들 수다떠는 아지트로...

 

코로나로 요즈음에는 잘 모이지도 못하지만..

 

그것마져 손에서 놓으면 ..자식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손주 봐달라고 할것 같아..

그게 너무 억울해서 점포는 현상유지만 해도 ..절대 포기 못한다고..

 

*****

 

가끔 부모와 자식은 무엇인가..그런생각이..

자식은 내가 이세상에 왔다 가는 ...흔적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 흔적이라는 것이 반드시 꼭 필요한 것인가..

자식은 열심히 벌어 공부시키고 ..결혼시켜주면 그것이 끝이아니라..

 

손주가 생기면서 자식 뒷바라지는 다시 원점부터 시작이고..

그 자식과의 인연은 죽어야 끝이나는 그런것 같다는 생각이다..

 

자식과 합치는 것이 싫어 ..

집을 주택연금에 저당잡히고..점포를 적자(?)를 보면서 운영하고..

 

백번 이해한다..

 

이세상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은 있어도..

그것을 이해못하는 나이든.. 자식을 둔 ..부모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식에게 도움을 주기도 싫고..지금은 도움을 줄수도 없지만..

하지만  자식을 이해는 한다..

 

나도 우리부모에게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한적이 분명히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는 그런 무리한 요구도 서슴없이 한적이 분명히 나도 있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자식들에게 먹이를 제공 하려고 죽음도 불사하고..

 

먹이 한점을 구하려고 온몸을 던지는 ..

그리고 새끼가 보는 앞에서 처참히 즉어가는 동물의 세계를 수없이 보았다..

 

어쩌면 그게 삶이다

그게 사는 정답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개봉동 에서.. 한 세 상..